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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Happy End. (해피 엔드)_4화
물위에 하루키 | 2019.04.09 | 조회 1,837 | icn_comment5

3.

 

2012126일 목요일 오후 7.

 

고약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한강의 끝에서 불어와 대교를 건너 계속해서 서울의 높은 빌딩에 부딪치길 반복했다.

귀를 덮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길게 자란 젊은 청년이 아까부터 이촌 한강공원 게임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어눌한 걸음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였고 훔쳐보던 주변 사람들은 그를 피하며 지나쳤다. 잠시 멈춰 선 그는 뭔가 고민에 빠진 듯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가스라이터의 불빛이 잠시 그의 동공을 비췄는데 도통 생각을 알 수 없는, 졸음 가득한 눈빛이었다. 청년은 군밤장수 같은 잠바, 낡은 갈색 카고 바지를 입었는데 옷이 워낙 낡아 한눈에 보기에도 거리의 부랑자 같아 보였다.

 

같은 시각, 박현수는 이촌 한강공원 공용주차장에 주차했다. 200만 원이 넘는 프라다 재킷을 입고 웃옷으로 버버리에서 새로 나온 다크 그래이색의 코트를 걸친 현수의 차는 폭스바겐에서 나온 구형의 부가티 걸리버였다. 한눈에 보아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고급스러운 명차였다. 고색창연한 부가티 걸리버는 자동차이기 전에 하나의 예술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가치 있는 자태를 뽐냈다. 현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뚜벅뚜벅 걸어 공원으로 나왔다.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였다. 명석해 보이는 눈매와 또렷한 이목구비는 현수의 자신감을 대변하는 듯 했고, 그의 웃음에는 여유가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현수는 한강 공원에서 종종 생각을 정리하거나 앞으로의 소설을 계획하곤 했다. 마침 새로 옮긴 작업실도 정리가 끝났고, 기말고사도 끝이 났기에 그날도 어김없이 한강을 바라보며 과도하게 넘쳐나는 서울의 오만한 불빛을 뒤로한 채, 상념과 무질서한 계획들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평생 고독했던 소설가 김채희의 그늘에서 문화생으로 3년을 지냈던 20대부터 지금까지... 늘 그랬듯, 현수는 소설가로서 자신의 성공을 바랐던, 야망에 가득 찬 남자였다.

 

공원의 중앙으로 걸어가던 박현수에게 낡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현수는 직감적으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현수는 낡은 그림자의 손에 든 과도를 보았다.

 

잠시 후 현수는 자신의 얼굴과 어깨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낸 뒤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손에는 구형 부가티 걸리버의 열쇠가 꽉 쥐어져 있었고, 열쇠는 빨간 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어느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쓰러져 있는 현수와 목에 피를 흘린 채 짧은 과도를 들고 쓰러져있는 이름 모를 젊은 청년에게 쏠려 있었다. 공원의 잔디바닥 위를 검붉은 핏물이 질퍽하게 적셨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던 어느 날, 이촌 한강공원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칼부림에 침착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며, 평화와 거리가 먼 장면이 틀림없었다. 아기를 안고 있던 신혼부부는 아이의 눈을 가리고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고 몇몇 젊은 여성들은 공포와 오열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뒤늦게 사건 현장을 보지 못한 호기심에 찬 사람들은 좋은 구경거리라도 있는 듯 뛰어왔고, 죽은 채 바닥 위에 쓰러져 있는 이름 모를 청년을 보고 나서야 몹시 놀라 그 자리를 피했다.

30분 후 누군가 112에 신고했는지, 경찰이 차를 세우고 인파를 헤치며 사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고, 박현수와 이름 모를 한 남자를 실어 근처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저 코트 입은 사람 소설가 박현수 아냐?

누가 누굴 죽인 거야?

, 노숙자 같은 놈이 먼저 달려들던데.

어쨌든 둘 다 의식이 없는 거 같은데?

꿈꾸는 듯 사람들의 목소리가 현수의 귓전에 맴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박현수는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래서 나쁜 행위를 숨기기 쉬운, 튀지 않는 삶이었다.

 

 

다음날 오전 8,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현수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옆구리는 이미 출혈이 멎었고, 얇은 붕대로 감아져 있었다. 심한 출혈은 아니었다. 찔렸다는 표현보다 약간 베였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최고급 일인실의 병실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경미한 상처였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의사의 물음에 현수는 꿈에서 깬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서 옆구리에 2센티미터 가량 찔린 상처 말고 큰 외상은 없었습니다. 아마 두꺼운 옷 덕분에 과도가 빗나간 것 같습니다.

의사는 국어책을 읽듯 딱딱한 어조였다. 옷을 두껍게 입어서 빗나갔다고 했지만, 이 정도 상처라면 처음부터 찌를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왜 여기 입원하게 된 거죠?

현수는 병실에 누워있는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깥 날씨에 비해 따듯했지만, 가습기는 꺼져있어 지나치게 건조한 병실이었다.

,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했고 충격이 심하셨는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일반병실 입원절차를 밟았습니다.

일반병실이라고 했지만, 현수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병원에서 현수의 신변 보호를 위해 배려한 듯했다. 의사는 현수에게 간단한 진료를 하고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셨더군요.

, 별로 입맛이 없어서요.

그렇군요. 점심은 꼭 챙겨 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병원 요리는 유명하거든요.

의사는 병원이 식당인 것처럼 너스레를 떨곤 병실을 나갔다.

, 그렇게 하죠, 라고 말하는 현수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의사가 나간 후 간호사들은 현수 주위를 맴돌며 감시하듯 그를 훑어보았다. 현수는 간호사들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간호사들이 지나치게 의식하고 티를 내며 그의 방에 들락날락했기 때문이다. 현수는 간호사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병실에 누워 TV를 보는 척 했지만 날카롭게 곤두선 표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시선을 TV 화면에 둔 현수는 머릿속으론 어제저녁 일어난 일을 생각했다. 꿀꺽 침이 삼켜졌다.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 자신을 찌른 괴한은 도대체 누구인지 한참 동안 생각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짧은 과도에 찔릴 때 현수는 프라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코트 오른쪽 주머니 속엔 동전 네 개와 자동차 열쇠 세 개가 들어있었다. 현수는 부가티 걸리버 말고도 자신의 명의로 두 대의 구형 외제차를 더 보유하고 있다. 현수는 흔한 신형의 외제차를 타는 것보다 희소성 있는 구형의 외제차를 타는 것이 더 멋지다고 생각했으며, 차 값으로 몇 십억은 투자해서, 세대 정도는 보유해야 존경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유명세가 더 빛을 발한다고 믿는 인간이었다.

현수는 TV에서 고정된 시선을 자신의 무릎으로 떨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어제 자신을 찌르고 달아나는 괴한의 긴 머리채를 왼손으로 붙잡고 오른손으로 주머니에 있던 열쇠를 송곳처럼 잡아들고는 그의 목을 두 차례 찔렀다. 분명 괴한이 먼저 자신을 찔렀고, 우연히 그의 목을 찌른 것으로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현수의 머릿속엔 자신이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목을 찔렀을 때 자신의 얼굴에 튀었던 뜨거운 피가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는 듯 했다. 그 느낌은 그물처럼 자신을 감싸는 두려움이 될 것이다.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마가 아니라면 십중팔구 누구나 그럴 것이다.

 

박현수가 입원했다는 소식이 병원 내에 퍼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입원한 사람 중 몇 명은 현수의 소설책을 들고 와 사인을 받기 위해 몇 번씩 그의 병실 문을 열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그들을 돌려보냈고 병원 측에선 현수의 안정을 위해 지시한 사항이라 지켜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병원 간호사들과 현수 팬들과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갔고, 현수는 그때까지도 멍하게 앉아 자신을 찌를 만한 사람을 생각했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과 자살한 김채희의 미소 띤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현수는 처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병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창문과 햇빛의 경계가 불투명하게 현수의 모습을 비췄다. 따사로운 햇빛이 현수를 감싸고 있었지만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후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현수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현수는 몸을 돌렸다.

누구시죠?

현수가 말했다. 좀 전과 다르게 그의 뒤로 비치는 햇빛이 차갑게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경찰입니다.

그러시군요.

현수는 예상했다는 듯 지적이고 여유로운 반응을 보였다. 침착하고 부드러운 어조였다. 경찰이라고 말한 사람의 이름은 장형식. 나이는 서른 살 안팎으로 생김새는 뚜렷하지 않았다. 장형사는 현수가 그동안 출판한 소설을 다 읽었다고 말했고 형식적으로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현수를 위한 웃음은 아닌 것 같았다.

어제 사건은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장형식은 여전히 형식적인 태도였다.

그는 어떻게 됐나요?

죽었습니다. 당신이 쥐고 있던 자동차 열쇠에 목이 두 번 찔렸더군요.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현수는 다급한 어조로 형식에게 물었다.

, 현수씨는 정당방위입니다. 이미 주변 목격자들의 증언을 확보했고 공원 내 CCTV도 확인해 봤습니다. 그가 먼저 과도를 들고 당신에게 달려들었고 당황한 당신이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내 그의 목을 찌르더군요. 분명 그가 먼저 과도를 들고 달려들었기 때문에 명백한 살인의 고의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수 씨가 그를 알고 계시냐는 겁니다. 혹시 원한 관계나, 현수씨도 그를 죽이려 했다거나 하는.... 뭐 그런 거 말입니다.

사실, 병원에서 의식을 차린 후 지금까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혹시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있느냐에 대해서요. 하지만 없었습니다. 저는 저를 찌르려 한 그를 모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제 삶과는 아무런 관련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군요. 장형식의 말이 끝나자 창문 밖의 바람이 노크하듯 창문을 두들겼다. 창문을 한번 바라보던 형식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 같은 유명인들은 종종 이런 묻지 마 사건에 휘말리기 마련이죠. 너무 염려 마세요. 사건은 잘 처리될 겁니다. 오히려 갑작스레 충격에 휩싸이신 건 아닐까, 걱정 되네요.

하지만 제가 그를 죽인 건 옳은 일일까요? 아무리 정당방위라곤 하지만 두렵고 무섭습니다.

현수가 말했다. 그리고 형식은 옳은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였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만은 확실했다.

저는 현수 씨와 이런 문제를 두고 논의할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과 죽은 사람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이제는 그냥 기계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죠. 그리고 피해자의 신변을 지키는 것도 제 일이죠. 괜찮으신가요, 교수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만 빼면 괜찮습니다.

그럼 다행이군요. 그는 교수님이 죽인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죽어버린 거죠. 그렇게 생각하시면 편할 겁니다. 살인을 하려는 사람은 결국 자살을 하려는 사람과 비슷한 심리상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 참, 퇴원하게 되시면 경찰서에 한번 들러주세요.

장형식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명함을 받아든 현수의 손은 차가운 쇳덩이 같았다.

손이 많이 차갑네요. 나가면서 병실히터를 좀 틀어달라고 말하죠.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장형식이 돌아가자 순식간에 해는 침몰했고 달빛이 차분하게 어둠에 젖어들며 떠올랐다. 점심을 먹지 않은 현수는 병원 매점에서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매점 창문 밖으로 별 몇 개가 달 주변과 멀리 떨어져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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